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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  예배순서의 표준은 어디인지요?
  질문 : Isaac ( 2012-04-28 )   
예배의 순서가 교단마다 또는 교회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습니다.  
묵도로 시작하는 교회, 복음성가로 찬양을 드린후 시작하는 교회, 성경봉독을 성우의 목소리로 영상으로  하는교회, 여성권사님이 단위에서 낭독하는 교회 등등 순서가 다양합니다.
예배의 순서는 어디에서 유래되였으며 표준은 무었이라고 생각되시는 지요?

성경에도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있습니까?  성경학자들간의 견해차이 입니까?
어느 목사님은 나는 보수가 되어서 주일저녘예배를 (보통 19:00) 고수하신다고 합니다.
끝으로 주일예배시에 내국인이 작사 작곡한 복음성가로 찬양드리는 것은 성경학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또한 목회자의 세금부과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의 구절인용이 맛는지요?
나아가서 한국교회의 존립을 초래하는 재앙이 될것이라는 예상도 하고 있습니다.
성경통신원의 성경적 원리를 듣고 싶습니다.

두서없이 질문을 드립니다. 도움이 되는 답신을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답변 : 2012-04-30    
상당히 많은 질문이군요, 되도록 간략하게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교단마다 예배순서의 차이는 그것을 만든 교단들이 이유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때문에 다만 성경에 나타난 부분만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몇 시에 예배를 드리라거나 예배의 순서는 무엇, 무엇을 순서대로 하라는 내용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를 않습니다.

다만 나타난 내용들만 보면 먼저는 구약이나 구속역사 이전의 내용들은 차치해 두고 최초의 현재 교회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는 (행 2:42)에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는 것을 보면 대단히 단순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
여기 내용에서는 ‘메시지, 교제(koinonia, 이것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주님의 만찬, 기도’ 정도가 나타나고 나중 44~45절의 내용은 연보로 나타납니다.

다음 사도행전20:7에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라는 기록에서 매 일요일 날이라는 빈도 속에서 예배의 중심이 주님의 만찬이 중심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여기서의 메시지는 바울이 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중의 서신서들 중에서는 고린도전서14:26에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는 내용입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모임의 항목들은 지금은 유효하지 않은 것들도 있지만 ‘찬송시, 메시지’ 같은 형태는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것들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연보는 주님의 날 하나님께 감사하며 드리는 것이긴 하지만(고전 161~2) 성경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섬김을 위한 것으로 기록 되어지고 있습니다.(고후 8~9장을 참조하십시오)

교회 탄생에서 상당한 역사가 흐르기까지의 예배는 상당히 단순한 형태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오순절 교회 탄생 이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한번으로 영원한 제사를 완성하신 십자가의 희생을 기념하라신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전승을 준수하면서 거기에 “케리그마(kerygma)를 통한 주님의 만찬의 당위성을 강설(講說)하는 형태의 메시지가 늘 함께 하였고 시편과 같은 찬양이 함께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을 다 살필 수는 없지만 역사를 지나며 교파를 따라 강조하는 부분이 달라지고 하면서 지금의 각각의 형태로 자리잡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교파의 순서가 나은가 보다는 신앙의 출발점인 성경에 나타난 것을 찾아 거기에 맞추는 자세가 가장 옳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예배 시작할 때 흔히 하고 있는 “묵상기도”(창 24:63); (느 2:4); (욥 15:4) 같은 것은 구약성경 속에서는 개인의 기도의 형태로는 더러 나타나지만 신약성경에서나 교회의 모임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순서를 달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에서 나타난 예배의 형태를 잃어 버리거나 강화 또는 악화시킨 것들의 회복일 것입니다.


둘째로,
보수 진보의 문제인데 둘 다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잘못된 것을 계속 지키려고 하는 보수는 옳지 않은 것이고, 지적하신 대로 저녁 19:00 예배가 성경에 명시된 것도 아니고 계절과 도시 시골간의 차이도 있을 진데 그 시간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에도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생각해봐야 될 문제입니다.

다만 여기서도 너무 인간의 편리에 맞추어서 주님 앞에 모이는 것을 폐하거나 하는 것은 분명 경계되어야 과제인 것은 분명합니다.

시대가 변했으니 시대에 맞추어 가야 한다고 진보를 주창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2천년 전에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이치는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의(~ism) 자체가 사실 괴물과 같이 붙여진 이름입니다. 논쟁의 산물이고 카테고리(category)라고 하는 것이 범주를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 앞에 옳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진리”는 사람들의 논쟁의 결론이 아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런 격량(激浪)의 물결에 휩쓸릴 필요가 없이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요8:32)


셋째로,
찬양은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셔서 지어진 찬양이 외국인이든지 내국인이든지 막론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찬양이고 감격으로 드려지는 것이라면 같은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있어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지구촌과 우주의 범주를 넘어서 통치하시는 주님의 위엄을 제한 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서양음악의 형태의 찬송만이 아닌 우리의 소리로 드리는 단성음조의 찬양이 찬송에서 제외될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즉 우리 국악 형태의 음악도 더불어 영광드릴 수 있다면 제외할 이유는 없다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이 육신을 벗고 완전한 구원에 들어가기까지 몸을 입고 이 땅에 살면서 국가나 정부의 보호를 받고 사는 사람이면 목회자를 떠나서 예외 없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눅 20:25) 라는 말씀의 열외 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알기로는 소수를 제외한 영적으로 살려고 하는 대부분의 주님의 일꾼들은 경제에 있어서 열악하여 오히려 정부로부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목회자이기 때문에 옛 이스라엘 열두 지파 속에서 레위인 같은 어떤 특권을 누릴 근거는 이 세상에서와 복음 속에서는 없습니다.(벧전 2:9)

그것이 한국교회의 존립을 초래하는 재앙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지나친 생각이라 여겨집니다.

이 정도의 답변에서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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